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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사보제작, 디자인 공들여 만들고도 왜 로비에 쌓여만 있을까?본문
안녕하십니까? 희명디자인입니다.
사보 제작이 끝나고 배포되는 날, 로비 테이블에 가득 쌓인 새 책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일주일 뒤에 가보며 맨 위의 몇 권만 빠져 있고 나머지는 그대로입니다. 한 달 뒤에는 결국 뜯지도 않은 묶음이 재활용 박스로 향하곤 하죠. 기획 회의 때 그렇게 진지했던 열정은 어디로 간 걸까요? 사보를 몇 번 제작해 본 담당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셨을 씁쓸한 장면입니다. (실제로 사보의 '잔존율'은 배포 후 48시간 이내에 결정된다는 통계가 있을 만큼, 초기 시각적 장악력이 중요합니다.)
진지한 기획, 그러나 조용한 반응
기획 회의 자리에서는 모두가 진심입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사보를 만들어보자", "임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채우자", "브랜드 이미지도 세련되게 담아야지". 몇 달을 공들여 원고를 모으고, 사진을 선별하고, 레이아웃을 잡습니다. 인쇄소와 수차례 조율하며 밤을 지새운 결과물이 드디어 세상에 나옵니다.
하지만 배포 이후의 반응은 야속할 만큼 조용합니다. "디자인 잘 나왔네요"라는 의례적인 인사는 듣지만, 실제로 어떤 내용이 읽혔는지, 독자의 뇌리에 무엇이 남았는지는 들려오지 않습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누구를 위한 사보인가: 엇갈린 두 시선
사보 제작 초반에 가장 자주 마주하는 질문은 "이 사보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입니다. 회의에서는 보통 두 가지 방향이 동시에 제시됩니다.
대외 브랜딩 자료: 회사의 비전과 성과를 정리하여 외부 파트너나 고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공식 자료.
내부 커뮤니케이션 도구: 임직원들이 편하게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
문제는 이 두 방향이 같은 지점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40페이지 남짓한 공간 안에 서로 다른 성격의 콘텐츠를 고르게 배치하게 됩니다. 섹션은 다양해지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독자는 "이 사보가 나에게 말하려는 핵심이 뭐지?"라는 질문에 답을 얻지 못한 채 책을 덮어버립니다.
기획 의도와 재료의 간극
기획 단계에서는 늘 혁신을 외칩니다. "작년에는 딱딱했으니 이번엔 친근하게", "지난번엔 가벼웠으니 이번엔 무게감 있게". 하지만 실제 콘텐츠 수집 단계로 들어가면 기획 의도는 이내 흐려집니다.
각 부서에서 취합되는 원고는 여전히 경직된 보도자료 톤이고, 사진은 행사 때 찍은 단체 사진 위주입니다. (인쇄 공정에서 사진의 해상도가 낮거나 구도가 정형화되어 있으면, 아무리 후보정을 거쳐도 '현장감'을 살리기 어렵습니다.) 디자이너는 이 재료들로 "공감 가는" 동시에 "신뢰감 있는" 결과물을 빚어내야 합니다. 하지만 원고와 사진의 톤이 이미 고정되어 있다면 디자인으로 조정할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폰트를 바꾸고 여백을 조절해도 내용 자체의 분위기까지는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 중요하다'는 전제가 만드는 함정
사보는 빠뜨리면 안 되는 요소가 유독 많은 매체입니다. CEO 메시지, 부서별 소식, 신규 사업 소개, 인사 공지, 동호회 소식까지. 모든 항목이 중요하다는 전제 아래 페이지 수는 늘어나고 각 섹션은 기계적인 분량을 배정받습니다.
이렇게 구성된 사보는 독자에게 '우선순위'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모든 페이지가 비슷한 비중과 레이아웃으로 구성되면 독자는 스스로 중요도를 판단해야 하는 피로감을 느낍니다. 그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페이지를 넘기는 손길은 멈추고 맙니다. "모든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결국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다"는 결과로 이어지는 셈입니다.
디자이너, 레이아웃 작업자를 넘어 정보 설계자로
실무에서 사보 디자인은 단순히 보기 좋게 배치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습니다. 디자이너는 '정보 정리자'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 원고에서 독자에게 전달해야 할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페이지에서 시선이 가장 먼저 머물러야 할 곳은 어디인가?
어떤 사진이 이 페이지의 감정(Tone & Manner)을 대변하는 대표 이미지가 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판단 기준이 기획 단계에서 정리되지 않으면, 모든 설계 책임은 디자이너 개인의 해석에 맡겨집니다. 디자인은 단순한 심미적 작업이 아니라 정보의 우선순위와 읽기 흐름을 설계하는 공학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특히 종이의 질감이나 책등의 곡선 같은 물리적 디테일이 정보의 신뢰도를 결정짓는 마지노선이 되기도 합니다.)
독자의 찰나를 설계하라
우리는 흔히 사보를 "출퇴근길에 읽는 매체"로 상정합니다. 하지만 실제 풍경은 다릅니다. 사보가 펼쳐지는 순간은 배포 직후의 짧은 찰나, 혹은 로비나 휴게 공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잠시 머무를 때입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독자는 직감적으로 판단합니다. "내가 볼 만한 가치가 있는가?" 이 판단이 부정적이라면 사보는 다시 펼쳐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보 디자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정독된다는 낙관적인 전제 아래 설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디자인이 아니라 '목표'의 문제
사보가 명확한 목표 없이 제작될 때 "만들어지고도 안 읽히는" 비극이 반복됩니다. 이는 디자인의 완성도 문제가 아닙니다. 독자가 이 사보를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보는 예쁘게 만드는 것보다 '왜 만들고, 누가, 언제 읽는가'를 먼저 정의해야 합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선명해질 때 비로소 읽기 경험(Reader Experience)이 살아납니다. 제대로 기획된 사보는 배포 직후의 짧은 시간 안에도 핵심을 전달하며, 시간이 지나도 회사의 강력한 인상을 만드는 자산이 됩니다.
사보 제작과 디자인 설계에 고민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편하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독자의 시선을 머물게 하는 전략, 희명디자인이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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